Opening of a graduate program on the University of Utah Asia Campus

The University of Utah‘s Department of Communication is pleased to announce the opening of a graduate program on The University of Utah Asia Campus this fall semester. Here’s an introduction from Avery Holton, Chair of the Department of Communication. More information about the program is available here. https://lnkd.in/g2CJPzWk 

유타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과는 올 가을 학기에 인천 송도 아시아 캠퍼스에 대학원 프로그램을 개설합니다. 에이버리 홀튼 커뮤니케이션학과 학과장의 프로그램 소개입니다. 자세한 정보는 여기에서 더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카시아 껌을 사랑한 톱배우

최근 언론을 통해 유명 연예인의 매니저 갑질 사례가 연이어 보도되고 있다. 연예기사는 내가 경험한 언론과 거리가 멀지만 지인으로부터 들은 얘기를 하자면 한도 끝도 없을 만큼 기삿거리가 넘친다. 내가 다니던 상암동 회사 바로 옆에 근무하는 가까운 지인으로부터 들은 일화다. 때는 2016년 마마 공연이 이뤄진 홍콩에 국내 아이돌과 최고의 연기자들이 초대됐다. 공연을 주관한 방송사는 연예인들의 항공권(유명세와 인기에 따라 비즈니스석과 일등석으로 지급)과 호텔(대형 기획사의 경우 한 층을 통째로 제공) 숙박을 지원했다. 문제는 시상에 나설 한 국내 정상 톱배우 A가 갑자기 난데없이 껌 타령을 해서 논란이 일었다. 당장 자신에게 아카시아 껌을 가져오지 않으면 무대에 오르지 않겠다며 폭탄선언을 한 것이다. 행사 시작을 얼마 앞두지 않고 여섯 살 어린이나 할 법한 어리광에 회사 직원들은 비상이 걸렸다. 홍콩에서 당장 어디서 아카시아 껌을 구한단 말인가. 담당 피디는 해당 배우에게 하소연했지만 A의 고집은 완강했다. 결국 피디가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아카시아 껌을 공수해왔고 행사시간에 맞춰 배우에게 껌을 전달하기 위해 헬기까지 뜨는 007 작전이 홍콩에서 벌어졌다. 톱배우의 까다로운 껌 취향에 정해진 행사 진행 순서까지 수정돼야 했고 그의 등장을 불과 몇십 분을 앞에 두고 껌을 전달했다고 한다. 배우는 맛있게 껌 하나를 씹으며 행사장으로 향했고 하얀 피부와 온화한 미소로 열광하는 아시아 팬들에게 손을 흔들며 시상을 마쳤다는 후문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담당 피디는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결국 병원 신세까지 져야 했다고 한다.

이번엔 껌이 아닌 김밥이 문제였다. 이미 국내에서 방영된 한국 드라마를 해외에 팔 땐 출연 배우들이 현지에 가서 프로모션 활동을 한다. 국내 케이블 방송사에서 제작한 한 드라마가 일본 시장에 팔렸는데 현지 프로모션 활동에 필요한 화보 제작이 한남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진행됐다. 제목이 특이한 탓에 나 역시 그 드라마를 기억하고 있었지만 국내에서 그다지 흥행하지 못한 드라마였다. 방송사 측은 배우들의 점심을 위해 꽤 퀄리티가 좋은 도시락을 준비했다. 그런데 드라마 남자 주인공 B가 도시락을 보며 불만을 터뜨렸다. 자신은 김밥을 먹고 싶다며 당장 김밥을 자기 앞에 대령하라고 지시한 거였다. 막내 직원이었던 지인은 허겁지겁 밖으로 달려 나가 김밥 세 줄을 구해왔다. 김밥을 본 B는 고함쳤다.

“야! XX 나보고 지금 이거 먹으라는 거야?”

지인은 평소 온화하고 겸손한 이미지의 배우 B가 던진 상스러운 한마디에 몸이 얼어붙어 어쩔 줄 몰랐다고 했다. 그러자 B의 매니저가 지인을 부른 뒤 그가 프리미엄 김밥을 원하는 것 같다고 말했단다. 지인은 동네 곳곳을 돌아다니며 제법 비싼 프리미엄 김밥 5종을 사서 다시 돌아왔다. 배우의 대답은 또 한 번 기가 찼다. 그는 김밥이 올려진 테이블을 발로 차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원하는 게 없네. 안 먹어.”

화가 난 지인은 프랜차이즈에서 판매하는 김밥 30개를 사들고 다시 나타났다. 그제야 B는 김밥 하나를 골라 먹었는데 그가 고른 건 김밥천X에서 판매하는 가장 저렴한 김밥이었다. 속상했던 지인은 유명 남자 배우 B에게 자신이 방송국 직원이란 사실을 밝혔다. 그러자 B는 지인이 외주사에 근무하는 아르바이트 직원인 줄 알았다며 사과했다고 했다. 외주사 직원에겐 갑질 부려도 되고 방송국 직원에겐 예의를 갖춰 조심했어야 한단 말인가. 취향이 독특하면 자신이 좋아하는 껌과 김밥은 직접 좀 챙기자. 

피의자 좀 찍을게요.

첫 직장에서 수습 생활을 마치고 새벽 출근에 적응해 나갈 때였다. 출입처도 서구, 사하구, 영도구에서 동구, 부산진구, 연제구로 조정됐다. 그날도 어김없이 새벽 4시에 울리는 요란한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깼다. 자정까지 이어진 회식 탓인지 일어나자마자 숙취에 시달렸다. 머리를 바늘로 콕콕 찌르는 듯한 두통과 온몸을 짓누르는 피로감에 침대에서 벗어나기까지 한참이나 걸렸다. 벗다만 와이셔츠와 구겨진 정장 바지를 대충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9월 중순 초가을, 부산 도심의 새벽 도로는 한산했다. 차를 몰아 경찰서 세 곳을 돌며 간밤에 벌어진 사건 사고를 챙겼다. 앞선 두 곳에선 별다른 사건이 없었다. 마지막에 들른 경찰서에서 당직팀 형사들과 앉아서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밖에서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다. 자리에서 일어나 경찰서 정문 쪽으로 걸어갔다.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20대 청년이 양손에 수갑 찬 채 강력팀 형사들과 들어오고 있었다. 화들짝 놀란 나는 강력팀장에게 물었다.

“팀장님. 이거 뭐예요?”

“아. 이 기자. 나 지금 좀 바빠서.”

강력팀장은 난감한 표정을 보이며 날 피했다. 나는 곧장 형사 과장실로 달려갔다.

“과장님. 지금 강력팀에서 잡아온 청년 저거 무슨 사건이에요?”

“아. 곤란한데.”

“과장님.”

“살인사건이에요.”

“네?”

“술 마시고 주택에 들어가서 여자 성폭행하려다가 반항하니까 칼로 찌른 거예요.”

“피해자, 피해자는 어떻게 됐어요?”

“큰 딸은 현장에서 사망했고 엄마는 중상. 작은 딸은 경상입니다.”

“네? 여자만 셋이 사는 집이에요?”

“네.”

나는 캡에게 전화해서 사건을 보고했다. 캡은 촬영기자를 경찰서로 보낼 테니 같이 사건을 취재하고 회사로 복귀하라고 지시했다.

“과장님. 저희 간단히 범인 뒷모습 스케치만 하고 인터뷰할게요.”

“아. 이러면 안 되는데.”

“에이. 부탁드릴게요.”

“아직 보고서도 안 올린 거라.”

“제가 일찍 와서 취재하는 건데 과장님 위에 보고서 올리시고 타사 기자들 올 때까지 저희가 계속 기다릴 순 없잖아요.”

10여 분 뒤 촬영기자 신 모 선배가 경찰서에 도착했다. 나는 선배에게 사건 개요를 대략 설명하고 피의자를 조사하고 있는 강력팀으로 안내했다. 강력팀 형사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외투 하나를 가져와 범인 머리 위에 덮었다. 신 선배는 내게 와이어리스 마이크를 건넸고 환한 조명을 밝혔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마이크를 내밀었다.

“거기 왜 들어갔어요?”

그는 말이 없었다.

“여자들만 사는 집인 거 알고 들어간 거예요?”

순간 나는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그의 얼굴엔 여자 손톱으로 할퀸 상처가 가득했고 살기 어린 그의 눈빛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피해자가 자신을 덮친 그를 밀어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친 흔적이었다.

“고개 들지 말랬잖아!”

조서를 작성하던 강력팀 형사가 그의 목을 잡아 눌렀다. 강렬했던 그와의 눈 맞춤에 나는 어안이 벙벙하여 말문이 막혔다. 신 선배는 내 어깨를 흔들며 말없이 손가락으로 원을 그렸다. 카메라로 촬영 중이니 계속 질문하란 신호였다.

“아는 사람 집이었어요? 술은 왜 마셨어요?”

몇 가지 질문을 더 던졌지만 그는 묵묵부답이었다. 형사과장 인터뷰를 한 뒤 사건 현장에 들러 나머지 취재와 촬영을 마쳤다. 내 생애 첫 단독 보도였지만 기분이 찝찝했다. 취재를 마치고 경찰서에서 리포트 기사가 나가는 것을 보고 회사로 복귀하던 찰나였다. 보도전문채널, 신문사, 타 방송사 기자들이 한꺼번에 경찰서로 우르르 몰려왔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 역시 스무 살 어린 청년을 불러다가 카메라를 들이밀고 그가 저지른 끔찍한 범죄의 실상에 대해 꾸짖듯 질문할게 뻔했다.

그때는 그랬다. 경찰에서 제법 규모가 큰 사건을 해결하면 보도자료를 언론사에 뿌렸고 그것을 보고 찾아간 기자들은 피의자를 보여달라고 경찰에게 당당히 요구했다. 특히 방송기자들의 요구가 거셌다. 1분 30초짜리 리포트 화면을 채우기 위해서는 사건 현장과 범죄 내용, 사건을 해결한 경찰 인터뷰만으로는 부족했다. 사건 스토리의 주인공인 피의자의 모습과 인터뷰가 필요했다. 경찰은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하나로 똘똘 뭉친 젊은 출입기자들의 요구에 마지못해 피의자를 유치장에서 꺼내왔다. 심지어 불구속된 피의자를 추가 조사 목적으로 경찰서로 불러 카메라 앞에 세우는 경우도 있었다. 살인, 성폭행, 사기, 방화 등 온갖 갖가지 범죄를 저지른 자라 할지라도 그들에게도 인권은 존재한다. 피의자 신상공개는 주로 사회적으로 논란이 될 만한 흉악범죄를 저지른 자에게 여론의 요구에 따라 공개돼 왔다.

특정 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제8조의 2
(피의자의 얼굴 등 공개)

  1. 검사와 사법경찰관은 다음 각 호의 요건을 모두 갖춘 특정 강력범죄사건의 피의자의 얼굴, 성명 및 나이 등 신상에 관한 정보를 공개할 수 있다.

① 범행 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 강력범죄 사건
② 피의자가 범죄를 저질렀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는 경우
③ 국민의 알 권리와 재범방지, 범죄예방 등 오로지 공익을 위해 필요할 때
④ 피의자가 만 19세 이상으로 청소년이 아닌 경우

4가지의 조건에 모두 해당해야 신상정보 공개가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하나의 조건이 추가된다.

  1. 제1항에 따라 공개를 할 때에는 피의자의 인권을 고려하여 신중하게 결정하고 이를 남용하여서는 아니 된다.

신상공개 조건이 이처럼 복잡한 이유는 피고인이나 피의자는 유죄 확정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무죄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피의자 신상공개 규정은 2009년 강호순 연쇄살인사건 이후 흉악범 얼굴을 공개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면서 2010년 4월 신설됐다고 한다. 당시 관련 조항이 없었음에도 언론을 통해 강호순의 얼굴과 신상이 공개되면서 명확한 기준의 필요성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피의자뿐만이 아니었다. 대형 화재 사건이나 폭발 사고로 목숨을 잃은 피해자의 유가족에게도 마이크를 들이대야 했다. 가족을 잃은 슬픔에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내는 그들에게 다가가

지금 심정이 어떠세요?

란 어처구니없는 질문을 던지는 나 자신이 밉고 싫었다. 가끔 몇몇 피해자 가족들은 누군가에게 참고 있던 분노를 표출하고 싶은 마음에 기자에게 갖은 욕을 퍼붓기도 했다. 심할 땐 어린 기자들이 그들에게 멱살까지 잡히는 경우도 허다했다. 차라리 한대 세게 맞는 편이 오히려 죗값을 더는 기분마저 들어 마음이 한결 나았다. 데스크 자리에 앉아 있는 간부들은 입사한 지 1년도 채 안된 햇병아리 사건팀 기자에게 그렇게 하도록 시켰다. 20년 전 자신들도 그렇게 취재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당연한 거라 믿었다. 나는 이런 고민을 회사 선배에게 토로한 적이 있다. 선배는 내게 딱 한마디로 정리했다.

그걸 못하면 기자일 관둬야지. 정말 못할 짓이지만 그게 기자 일이야.”

뉴스는 오로지 시청자를 위해 만든다. 사건 사고의 심각성을 인지시키기 위해 유가족의 심정마저 담아내야 하는 게 기자의 일이다. 하지만 시청자들의 의식 수준이 높아진 지금 최소한 피의자와 피해자의 인권을 생각해서 뉴스를 제작해야 하지 않을까. 시대가 변함에 따라 언론 윤리 또한 변해야 한다.

기자는 정말 기레기일까?

처음 기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된 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하나는 우리 가족과 관련된 것이고 또 하나는 사회 정의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거창한 욕심이 있었다.

첫 번째 이유는 아버지가 80년대 해직기자였고 그런 아버지의 삶을 보고 듣고 자란 영향이 컸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그해 여름의 상처에서 소개했다.) 두 번째는 내가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니던 90년대, 당시 매일 밤 9시마다 방송되는 MBC 뉴스 프로그램 때문이었다.

“뚜뚜뚜 뚜.”

파란색 텔레비전 화면 가득히 뜬 아날로그시계에 초침이 움직이다 9시 정각을 가리킨다. 시끄러운 소음이 가득한 거리를 지나가는 행인의 시선마저 잡아끄는 요란한 시그널 음악과 함께 뉴스가 시작한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엄기영입니다. 0월 0일 뉴스데스크 시작합니다.”

나는 뉴스데스크를 하루도 빠짐없이 챙겨보면서 정의에 대한 내 생각을 정의했다. 카메라출동은 사회 곳곳의 부조리한 현장을 생생한 화면으로 고발했고 엄기영, 정동영과 같은 스타 앵커들은 그날 주요 이슈에 대해 자신만의 철학과 언론관이 담긴 촌철살인 클로징 멘트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 시대 MBC 뉴스는 여야 정치인 가릴 것 없이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 거침없는 날 선 보도를 이어갔다. 나이는 어렸지만 어른들의 세계에 관심을 갖게 됐고 상스러운 욕이 아닌 품위 있는 언어로 잘못된 관행과 불의를 예리하고 날카롭게 지적하는 기자들의 모습에 반했다. 단지 한 시간이 채 안 되는 뉴스를 보는 것만으로도 시청자들이 카타르시스를 느꼈던 때였다.

그들처럼 세상에 정의를 알리고 싶다는 욕심에 20년 뒤 나는 기자가 됐지만 현실은 달랐다. (처음 이직하고 난 이후 두 번째 직장에서 조금씩 그 욕심을 해소했다.) 사회부 기자로 새벽마다 경찰서를 돌며 사건 사고 쫓기에 바빴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씻고 준비하다 보면 30분이 훌쩍 넘어갔다. 차를 타고 부산의 동쪽 끝 해운대에서 서쪽 끝 서구, 사하구, 영도구로 향했다. 세 곳의 경찰서를 차례로 돌며 간밤에 벌어진 사건사고를 취재하고 6시 정각에 경찰서 전화로 캡(경찰서 출입기자를 관리 감독하는 10년 차 이상의 선배 기자)에게 첫 보고를 했다. 캡의 휴대전화에 뜨는 유선 전화번호로 내 현재 위치를 알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어디야?”

“네. 지금 영도서입니다.”

“보고해봐.”

“새벽 1시 10분쯤 영도구 영도동 2층짜리 단독주택 가정집 1층에서 불이 났습니다. 63살 주인 이 모씨가 연기에 질식해서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고 재산피해는 가재도구 포함해서 600만 원 정도입니다. 화재원인은 소방서에서 아직 조사 중입니다.”

“다음.”

캡이 지시한 단신 기사를 서너 개 쓰고 대략 8시부터 9시까지 황금 같은 개인 시간이 주어졌다. 경찰서 구내식당에서 아침도 먹고 차 안에서 쪽잠도 잤다. 급하게 나오느라 씻지도 못하고 출근한 날엔 경찰서 지하에 있는 목욕탕에서 퇴직을 앞둔 나이가 지긋하신 서장과 탕 안에 마주 앉아 민망한 모습으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9시가 되면 편집부 회의에서 결정된 아이템을 전달받았다. 간부들의 편집부 회의를 통과하는 뉴스 아이템의 선정 기준은 사회적인 의미보다 자극적인 소재 여부에 따라 갈렸다. 뉴스는 시청자의 신뢰가 생명이다. 그 신뢰는 시청률이란 숫자로 평가됐다. 간부는 자신의 능력을 시청률로 보여주려고 애썼다. 그렇게 하루하루 지나다 보니 어느 순간 나는 내가 생각한 가치 기준이 아니라 간부들이 좋아할 만한, 편집부 회의를 가볍게 통과할만한 아이템을 찾고 있었다.

수습생활과 사회부 초년병 시절을 거치다 보면 군대처럼 수직적인 보도국 문화를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된다.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입사한, 가장 자유롭고 창의적인 사고를 지닌 젊은 인재들은 입을 굳게 다문 채 오늘은 덜 욕먹어야 지란 생각으로 선배들 눈치보기에 급급해진다.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문화를 비판하면서도 우리 사회 그 어떤 조직보다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문화가 가득한 곳이 언론사였다. 사설이나 논평이면 모를까 기자 개인의 가치와 의도가 기사에 반영되기란 쉽지 않다. 편집부 회의에서 뉴스 아이템이 선정되고 일선 기자들은 데스크로부터 이른바 “총을 맞는다.” 데스크가 지시한 사안을 취재해서 기사를 써야 하는데 지시 내용에는 단순히 기사 주제뿐만 아니라 흐름과 방향까지 포함된다. 다양한 시각에서 한 가지 이상의 의미를 지닐 수 있는 이슈마저도 간부들이 정한 대로 기사를 쓸 수밖에 없다.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대부분 데스크 지시와 다르게 쓴 기사는 데스킹 과정에서 싹 뜯어고쳐진다. 가슴속에 열정이 남아있는 기자라면 자신보다 십 년 이상 기자 생활을 더한 선배를 상대로 세게 들이박고 한바탕 토론 배틀을 벌일 수도 있다. 하지만 기사의 최종 수정 작업은 데스크의 고유 권한이다. 그렇다면 차장급 이상 간부들이 모두 욕먹을 대상인가. 그들 또한 처자식을 가진 한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이기에 조직 내에서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이가 들고 연차가 쌓이면서 젊고 혈기가 왕성했던 그들도 점점 수동적으로 변해가는 것을 봤다. 나는 편집부 회의를 주재하는 보도국장(방송)과 편집국장(신문)의 의지와 역량이야말로 해당 언론사의 보도 가치와 방향을 결정짓는 핵심이라고 본다. 내가 있었던 곳만 하더라도 보도국장이 바뀌면서 뉴스의 질과 보도 흐름에 큰 차이를 보였다. 광고주 같은 자본 권력과 정권의 압박 등 정치권력으로부터 후배 기자들이 마음껏 취재하고 보도할 수 있도록 얼마만큼 리더가 버텨주느냐가 관건이다.

안타깝게도 언론사 노조위원장 출신으로 사장에 임명된 뒤 임기를 마치고 진보 정당 국회의원이 된 기자가 있었고 진보 진영을 향해 날 선 비판이 담긴 논평을 일삼던 기자가 보수 정당의 국회의원이나 청와대 대변인이 된 경우도 더러 있었다. 간부급 기자들이 퇴사한 직후 정치활동을 이어가는 모습은 그다지 아름다운 선배의 뒷모습이 아닐뿐더러 그들이 재직 시절 기자로서 또 간부로서 뉴스 제작과 보도에 어떤 가치 판단을 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속사정을 모르는 독자와 시청자들은 단순히 표면적인 기사 내용만을 보고 기사에 달린 이름의 기자를 향해 온갖 비난과 조롱을 퍼붓는다. 행여나 자신의 정치 성향에 반하는 내용의 기사라도 썼다면 해당 기자는 태어나서 듣지도 보지도 못한 모욕까지 감내해야 한다.

세상 어디에나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열정을 갖고 진실을 쫓는 기자가 있는가 하면 자신이 속한 조직의 집단 논리에 젖어 대충 간부 입맛에 맞는 기사를 찾아 쓰는 기자들도 꽤 있다. 아니면 그냥 위에서 시키는 대로 기사 쓰는 “회사원”도 많다. 적어도 내가 다닌 언론사에서 나는 세 부류의 기자들을 다 봐 왔다. 이들 모두를 향해 기레기라고 싸잡아 욕하는 건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기자란 직업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정의가 아닐까. 그렇게 많은 욕을 먹어도 언론은 여전히 시민들 편에 선 워치독이다. 나는 사회가 지금처럼 투명해지기까지 기자의 공은 상당히 컸고 앞으로도 여전히 그들의 역할이 중요할 거라고 믿는다.

같은 보수끼리 왜 괴롭히는 거예요?

김용준 총리 후보자 낙마 동아일보 보도

2013년 1월 종편으로 이직하자마자 나는 신문과 방송 사회부 사건팀 기자들이 반반씩 섞인 인사검증팀에 배속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취임을 두 달 앞두고 내각을 꾸려나가던 시기였다. 박 전 대통령은 김용준 인수위원장을 정부 첫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했다. 채널A를 포함한 모든 언론사 기자들이 김 후보자에 대한 도덕성과 자질에 대해 검증했고 취재 경쟁은 치열했다. 채널A와 동아일보는 김용준 후보의 땅 투기 의혹과 장남 병역 면제 의혹을 집중 보도했다. 결국 김 후보자는 총리 지명 닷새 만에 후보직에서 물러났다. 채널A-동아일보는 다른 언론사들을 제치고 김용준 후보자 검증으로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했다. 종합편성채널의 최초 수상이었다. 당시 MBC 출신의 이상호 기자 역시 고발뉴스 트위터를 통해 채널A의 수상 소식을 전했다.

김용준 총리 후보자의 장남 병역 면제 의혹 채널A 보도

취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각 장관 후보자마다 서너 명의 기자들이 달라붙어 그들을 “뒷조사”했다. 나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서승환 국토부 장관, 김종훈 미래부 장관 후보자를 맡아 취재했다. 윤병세 당시 장관 후보자를 취재하면서 딸의 이름 석 자만을 갖고 그녀가 한 국내 언론사에 근무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회사에 찾아가 그녀를 직접 만났고 이후 그녀가 대학 재학 중 가계곤란 장학금을 받은 것에 대한 기사를 써서 보도했다. 서승환 국토부 장관의 경우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서종철 전 국방부 장관의 아들이란 사실을 알고 부녀 정권의 부자 장관 임명이란 특이점을 발견했다. 그리고 시장주의학자로 알려진 서 장관이 세종시 건설을 강하게 반대한 전력과 그의 부인이 강남 사교육 시장을 옹호하는 책의 글 일부를 쓴 사실을 확인하고 이를 단독 취재해 보도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토균형발전 및 선행학습을 금지하는 교육 정책기조에 반하는 행적들이었다. 끝으로 김종훈 미래부 장관 후보자의 경우 해외에서 주로 생활한 탓에 정보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정 킴’ 이란 그의 미국 이름을 구글에 검색하던 중 그가 CIA 자문위원 출신으로 미국 부시 정권의 안보 전략 정책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안타깝게 간발의 차이로 인터넷 언론에 단독 보도의 기회를 놓쳤었다. 게다가 그가 미국에서 문란한 밤문화 생활을 보냈다는 증언까지 확보했고 채널A를 포함한 다른 언론사들의 보도가 이어지면서 결국 그는 장관 후보직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 인사검증팀장이자 사건팀 캡으로부터 국정원 직원들이 우리 팀원들을 예의주시한다는 얘기까지 들었다. 사실인지 거짓인지 확인되지 않았지만 그런 얘기가 돌 정도로 박근혜 내각에 대한 채널A의 보도는 날 끝이 제대로 서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시청자의 항의도 거셌다. 한창 장관 후보자에 대한 도덕성과 자질 의혹에 대한 보도를 이어나갈 때였다. 사회부 사건팀 테이블에 앉아 열심히 기사를 작성하고 있는데 사무실에 전화가 끊임없이 울렸다.

“저희가 다 취재하고 확인하고 보도했다니까요. 어떻게 마음대로 기사를 쓰겠어요?”

“네. 네. 고소하세요. 하시면 됩니다. 제 이름요? 채널A 사회부 000기자입니다.”

민원 전화에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다. 급기야 내 앞에 놓인 유선전화도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네. 사회부 사건팀 이준영입니다.”

“여보세요? 거기 채널A 맞죠?”

경상도, 특히 경북쪽 사투리가 심하게 배어있는 60대 어르신의 목소리였다. (나는 부산 출신이라 경남과 경북 사투리의 차이를 정확히 알고 있다.)

“네. 그런데요.”

“어이. 이 새끼야. 느그 뭔 생각으로 뉴스를 이따위로 만들어!”

“선생님. 진정하시고요.”

“뭐? 진정? 00하고 자빠졌네. 느그가 언론사야? 박근혜 대통령님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고 그래? 자꾸 저런 엉터리 기사 내보낼 거야? 내가 느그들 가만 안 둬!”

더 이상 상식적인 대화가 불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에 나는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수화기를 내려놓는 순간 같은 전화기에서 또다시 벨이 울렸다.

“사회부 사건팀 이준영입니다.”

“저 거기 채널A 사회부 맞죠?”

이번엔 30대로 추정되는 여성이었다. 그녀는 앞서 통화한 어르신과 달리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투였다.

“네. 맞습니다.”

“저기 이거 너무 심한 거 아니에요? 박근혜 대통령님 왜 이렇게 괴롭혀요? 채널A, 동아일보 다 보수잖아요. 같은 보수면서 왜 우리 박근혜 대통령님을 못살게 구는 거예요? 내가 일부러 채널A 챙겨보는데 이제 더 이상 못 보겠네요. 언론이 사실대로 보도해야지. 뉴스를 이렇게 왜곡해서 만들면 어떡해요?”

“어떤 보도를 보도 말씀하시는 거예요?”

“지금 방송하는 내용들 전부 다요. 장관 후보자들 비리 이거 전부 말도 안 되는 얘기잖아요!”

“저희가 다 취재해서 사실관계 전부 확인하고 쓴 기사예요. 여기도 언론사인데 없는 얘기 지어내서 쓰지 않습니다.”

“그러면 지금 저 앵커가 하는 얘기는 뭐예요? 다 거짓말이잖아요!”

그녀는 점점 언성을 높여갔다.

“준영아. 거 웬만하면 알겠습니다 하고 전화 끊어.”

충혈된 눈으로 나를 가엾이 바라보던 임 모 차장 선배가 말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사건팀 선후배들이 모두 하나같이 수화기를 들고 진땀을 빼고 있었다.

“잘 알겠습니다. 의견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서둘러 통화를 마무리 짓고 전화를 끊었다. 기사를 완성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 항의 전화는 하나같이 보수 성향의 시청자들로부터 걸려왔다. 애초에 진보 성향 시청자들은 보수 채널은 틀지도 않으니 우리가 어떤 보도를 하는 지 전혀 몰랐고 아마도 관심조차 없었을 것이다. 내 주위 사람들에게 김용준 후보자를 포함해 장관 후보자들의 비리 의혹에 대한 채널A 보도에 대해 말하면 진보와 보수 성향에 관계없이 다들 의아한 표정을 보이며 하나같은 반응이었다.

“채널A가 왜?”

보수 성향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진보 언론을 보지 않을 게 뻔하다. 사람들의 고정관념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게 된 계기였다. 박근혜 정부 내각 인사검증팀은 합숙하다시피 두 달을 회사에서 보냈다. 자정에 모여 회의하기도 하고 새벽 두시에 퇴근해 여섯시에 출근하는 날도 부지기수였다. 몸이 피곤하고 고된 기간이었지만 8년의 기자생활 중에 가장 보람된 시간이었다.

당신이 모르는 언론 이야기

지역 민영방송과 종합편성채널, 그리고 보도전문채널까지 8년 동안 성격이 다른 세 언론사에서 기자란 신분으로 직장생활을 했다. 새벽에 출근해서 밤늦게 퇴근했고 업무 특성상 토일, 주말과 휴일 이틀 가운데 하루는 늘 근무했으니 내 30대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이 업계에서 보낸 셈이다. 두 번의 이직을 거치면서 지원서 혹은 면접관으로부터 들었던 공통된 질문은 회사를 옮기는 이유였다. 산술적으로만 봐도 한 회사에서 3년이 채 안 되는 기간을 보낸 건데 누가 봐도 한곳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비춰질 뿐만 아니라 면접관들이 트집 잡거나 공격하기 좋은 질문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당연히 난 예상 질문에 대한 대답을 준비해야 했고 수십 년간 언론인으로 살아 온 그들에게 그럴싸한 거짓된 대답은 결코 통하지 않는 것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사직서를 쓰거나 경력기자 채용 지원서를 쓰기 전 나 자신과 솔직하고 진지한 대화의 시간을 가졌고 이직하고 싶은 이유에 대한 확실한 정의를 내렸다. 어찌됐든 두 번의 이직 모두 내가 원했던 회사에 들어갔고 실제 근무하지 않은 두 곳의 언론사로부터 최종합격 통보까지 받은 걸 보면 내 대답의 진정성을 면접관들이 인정해 준 듯싶다. 당시 내가 회사를 옮긴 이유는 이 글을 쓰는 이유이자 직접 경험한 한국 언론에 대해 내가 말하고 싶은 것과 상통한다.

YTN 편집부 기자/PD 시절 뉴스 부조 안에서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한국 사회는 민주화됐고 신군부의 언론 탄압은 사라졌다. 하지만 진보와 보수 둘로 나뉜 언론은 균형을 잃고 자본 권력에 휘둘리고 있다. 시대가 바뀌었지만 여전히 언론 자유는 한국 언론의 과제다. 언론이 지향해야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나만의 고민이 담긴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8년 밖에 안 되는 짧은 경력으로 언론에 대해 무슨 얘기를 하냐는 비난도 달게 받겠다. 세월이 20~30년 기자 생활을 한 선배 입장에서 보면 하찮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곳에 오래 머물러 있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 객관성을 잃고 편협해 지거나 업계 논리에 젖을 수 있다. 나름 덜 때 묻은 전직 언론인의 입장에서 본 언론 이야기로 이해해주길 바란다.

뉴스통

YTN에서 일을 시작한지 석달째입니다. 사회부 1달 근무 이후 지금은 편집부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이곳 편집부 기자는 뉴스 프로그램을 하나씩 맡아 PD로 일을 합니다. 첫 직장에서 잠깐 시사 제작 PD로 일했는데 이번엔 뉴스 PD 입니다. 제가 맡은 프로그램은 저녁 6시 부터 시작하는 뉴스통 입니다. 당일 뉴스 가운데 주요 이슈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앵커리포트가 다른 뉴스보다 많습니다.

매일 아침 시청률을 보면 중고등학교 때 성적표를 받아보던 기분입니다. 설레고 들뜨고 실망스럽고 전날 시청률에 따라 만감이 오갑니다. 그래봤자 0.5%안에서 오르락 내리락 하는 수준입니다. 같은 보도채널이다 보니 연합뉴스 TV의 생생네트워크와 뉴스메이커와 경쟁하는 분위기입니다. 우리나라 국민이 5천만이니까 0.5%면 25만 명이 되겠네요. 시청자들의 공감을 끌어내기 위해 YTN 기자, PD, 앵커, 작가들은 늘 고민하고 애씁니다.

현장

기자일 하다보면 보도자료 받아적는 내 모습에 지칠 때가 있다. 기껏해야 보충취재해서 내놓는 재가공 수준이다.

오죽하면 네이버가 언론 기사들이 하나같이 똑같다고 하소연할까?

기성 언론사 기자 대부분이 현장 갈 시간이 없다. 그 현장이란 곳도 보도자료에 나온 장소가 대부분이다. 여유가 있어도 무거워진 엉덩이 탓에 현장 갈 생각조차 없는 기자들이 많다. 정말 많다. 기자가 가야 할, 기자를 찾는 현장은 사회 곳곳에 많이 있다.

기자라면 이 스토리를 꼭 봤으면 싶다. 세상에 이런 변호사, 이런 기자도 있다.

https://storyfunding.daum.net/episode/12302

서울시 금연구역 단속 1명당 1,800여 곳 담당

“담배 좀 꺼주세요.”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52&aid=0000885933

지난주 토요일 인터넷에서 가장 핫한 기사가 하나있다. 지하철역에서 유모차를 끌고 가던 한 20대 여성이 담배를 피우던 남성에게 담배 좀 꺼달라고 얘기했다가 서로 뺨을 때리며 폭행으로 이어진 사건에 관한 이야기였다. 문제는 경찰이 해당 사안을 쌍방폭행으로 처리하면서 국민들의 분노를 샀다. 해당 사건을 취재한 기자 얘기를 들어보면 리포트가 당일 여러 차례 보도되면서 경찰은 난감해 했고 수차례 기자에게 전화해서 “처리”대신 “입건”으로 표현을 바꿔 달라고 하소연했다고 한다.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52&aid=0000885933

네이버에서 가장 많이 본 기사 링크는 물론이거니와 댓글 수도 엄청났다. 월요일 오전 뉴스통 편집회의에서 이 건을 짚어주자고 의견을 냈다. 앵커인 나연수 선배는 이 보도가 나가고 주변 몇몇 남성 흡연자들로 부터 차마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을 들어야만 했다고 토로했다. 본인이 냄새 맡기 싫으면 피하면 되지 왜 나서서 시비 걸다가 일을 크게 만들었냐는 얘기였다. 비흡연자인 나를 포함해 회의에 참석했던 작가들과 다른 PD들은 황당했다. 흡연 여부에 따라 생각의 차이가 크다는 것을 실감했다.

이미 2011년 부터 금연구역이 지정됐고 지하철역 역시 지난 5월부터 출입구로 부터 10미터 기준으로 확대지정된 바 있다. 기본적인 사회적 약속임에도 일부 흡연자들은 제도를 받아들이기에 아직 준비가 덜 된 것 같다. 서울시 건강정책팀에 연락해서 취재해 봤더니 서울지역 금연구역은 실내와 실외를 포함해 24만여 곳이나 됐다. 반면에 금연구역 단속요원은 각 자치구 소속인원까지 더하더라도 고작 130명에 불과했다. 계산해 보자면 한 명당 무려 1,800여 곳을 단속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당장 9월 1일부터 단속해서 과태료를 물리겠다는데 제대로 시행이 될 수 있을까.

Bye Bye Mike Sugerman

KPIX 5 Says Farewell To Veteran Reporter Mike Sugerman

7년 전 미국에서 공부할때 대학원에서 방송뉴스 작성법에 대해 강의했던 마이크 슈거맨. CBS 현직 기자였던 그가 지난달 은퇴했다고 한다. 피라미드형, 역삼각형, 다이아몬드형 기사 작성은 물론이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한 다양한 스탠드업을 가르쳐 줬던 겸임교수였다. 그의 추천으로 CBS 제작팀에서 인턴 경험도 쌓을 수 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고마웠던 분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37년동안 몸담았던 방송사에서 그의 은퇴를 기리는 리포트를 제작했다는 점이다. 우리 나라 언론사도 이렇게 쿨한 리포트를 만들면 어떨까? 수고했어요. 마이크 슈거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