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비행 학교 고르기

유학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커뮤니티에서 정보를 구했다. 현직 조종사와 조종사가 되길 희망하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가입한 곳이었다. 서너 군데 학교를 적극적으로 광고하는 곳도 있었는데 대부분 한국인 에이전트가 소개비 명목으로 500만 원씩 비싼 수수료를 받고 있었다. 가히 항공 강국이라 할 만큼 미국에는 셀 수 없을 만큼 비행 학교가 많았다. 그 가운데 대다수 한국 학생들이 선택하는 비행 학교는 극소수였다. 선택 기준은 학교가 위치한 곳의 날씨, 한국인 학생 수, 혹은 저렴한 학비 등 다양했다. 과거 A항공에서 예비 조종사를 뽑아 이른바 운항 인턴을 보냈던 학교엔 200명에 달하는 전체 학생 가운데 한국 학생 수가 절반이 넘었다.

미국 리버사이드 플라이트 센터

한국인 교관도 많았고 심지어 한국어로 번역된 홈페이지 서비스를 제공할 정도였다. A항공 교육기관이었단 입소문에 한국 학생들이 줄을 잇는 듯 보였다. 나는 가급적 한국인들이 드문 곳을 가고 싶었다. 새로운 경험을 만끽하려면 익숙한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일 년 내내 따뜻한 애리조나의 날씨는 비행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반면 플로리다의 경우 봄에 토네이도가 덮칠 정도로 날씨가 나쁘지만 한국 학생들이 많이 찾는 곳이었다. 미국엔 일교차도 크고 날씨가 변화무쌍한 곳이 많다. 파일럿은 비 오고 눈 내리는 흐린 날씨에도 비행을 해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날씨 변화가 잦은 곳이 비행을 배우기엔 더 좋다는 얘기를 듣고 날씨는 학교 선택 기준에서 제외시켰다. 문제는 비용이었다. 미국의 어느 비행학교를 가더라도 모든 과정을 마치는 데는 1억 가까운 비용이 들었다. 한 시간 비행기를 타는데 드는 비용이 100달러가 넘었다. 여기에 교관 비용과 체크 라이드 비용, 교재 등 모두 다 합하면 생활비를 제외하고도 최소 7천만 원이 필요했다. 그동안 일하면서 벌어 둔 돈을 쏟아 붓기로 결심하고 학비가 저렴하고 한국인이 적은 곳으로 선택했다.

여행 그 설렘

솔로 크로스컨트리 비행 중 Cessna 152

20년 후 당신은 했던 일보다 하지 않았던 일로 인해 더 실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돛을 펼쳐 안전한 항구를 떠나 항해하세요. 당신의 항해에 무역풍을 가득 담으세요. 탐험하고, 꿈꾸고, 발견하세요.

100여 년 전 마크 트웨인이 남긴 이 말은 도전과 설렘의 순간으로 가득 찬 인생으로 날 이끌었다. 독서와 사색을 좋아했던 탓에 학창 시절 문예부에서 글을 빌려 솔직한 내 안의 감정을 표현했다. 80년 해직기자였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언론인이 되길 원했고 꿈꿨던 방송 기자가 됐다. 사람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다니며 세상에 알렸다. 부산역 노숙자와 밤새 소주 마시며 삶의 애환을 달랬다. 순간적인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돌이킬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 스무 살 청년에게 마이크를 내밀었을 땐 분노와 함께 청춘을 져버린 그에게 아픈 연민마저 느꼈다. 남부러울 것 없는, 자수성가한 사업가로부터 가슴 아픈 속이야기를 들었을 땐 새옹지마를 떠올렸다.

사회부 기자로서의 삶은 내가 알지 못했던 세상에 눈 뜨게 했고 사람을 이해하는 마음을 넓혔다.

산업부 기자로 공항과 항공사를 출입하면서 항공업계 사람들을 만났다. 특히 취재하며 알게 된 조종사들은 소중한 인연이 되었다. 그들이 들려준 파일럿이란 직업과 경험담은 하늘을 날며 세상을 여행하는 삶에 대한 동경심과 호기심을 자극했다. 기자로서 7년 넘게 쌓아온 커리어를 이어갈지, 비행하는 새 삶에 도전할지 고민했다. 답을 찾는 데까지 그다지 오래걸리지 않았다.

10여 년 전 대학 영문학 수업 시간에서 만난 마크 트웨인의 말처럼 하지 않은 일에 대한 실망과 후회로 삶을 낭비하지 말고 새로운 삶을 개척해야겠다는 의지가 내겐 더 강렬했다. 나는 가보지 않은 미지의 그곳으로 직접 뛰어들기로 작정하고 1년 동안 먼 여행을 떠났다. 하늘을 날던 어린 소년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