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그 설렘

솔로 크로스컨트리 비행 중 Cessna 152

20년 후 당신은 했던 일보다 하지 않았던 일로 인해 더 실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돛을 펼쳐 안전한 항구를 떠나 항해하세요. 당신의 항해에 무역풍을 가득 담으세요. 탐험하고, 꿈꾸고, 발견하세요.

100여 년 전 마크 트웨인이 남긴 이 말은 도전과 설렘의 순간으로 가득 찬 인생으로 날 이끌었다. 독서와 사색을 좋아했던 탓에 학창 시절 문예부에서 글을 빌려 솔직한 내 안의 감정을 표현했다. 80년 해직기자였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언론인이 되길 원했고 꿈꿨던 방송 기자가 됐다. 사람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다니며 세상에 알렸다. 부산역 노숙자와 밤새 소주 마시며 삶의 애환을 달랬다. 순간적인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돌이킬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 스무 살 청년에게 마이크를 내밀었을 땐 분노와 함께 청춘을 져버린 그에게 아픈 연민마저 느꼈다. 남부러울 것 없는, 자수성가한 사업가로부터 가슴 아픈 속이야기를 들었을 땐 새옹지마를 떠올렸다.

사회부 기자로서의 삶은 내가 알지 못했던 세상에 눈 뜨게 했고 사람을 이해하는 마음을 넓혔다.

산업부 기자로 공항과 항공사를 출입하면서 항공업계 사람들을 만났다. 특히 취재하며 알게 된 조종사들은 소중한 인연이 되었다. 그들이 들려준 파일럿이란 직업과 경험담은 하늘을 날며 세상을 여행하는 삶에 대한 동경심과 호기심을 자극했다. 기자로서 7년 넘게 쌓아온 커리어를 이어갈지, 비행하는 새 삶에 도전할지 고민했다. 답을 찾는 데까지 그다지 오래걸리지 않았다.

10여 년 전 대학 영문학 수업 시간에서 만난 마크 트웨인의 말처럼 하지 않은 일에 대한 실망과 후회로 삶을 낭비하지 말고 새로운 삶을 개척해야겠다는 의지가 내겐 더 강렬했다. 나는 가보지 않은 미지의 그곳으로 직접 뛰어들기로 작정하고 1년 동안 먼 여행을 떠났다. 하늘을 날던 어린 소년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여행이었다.

클리어 프롭

클리어 프롭!

시동을 걸기 직전 창문을 열고 큰 소리로 외친다. 비행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엔진 작동을 알리는 말이다. 멈춰있던 비행기가 진동하며 움직이기 시작한다. 관제사의 이륙 허가를 받고 천천히 스로틀을 밀어 파워를 올리면 활주로를 달리던 비행기는 하늘로 날아오른다. 조종사의 능숙한 조작과 자연의 바람이 만나 1톤에 달하는 육중한 기계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 된다.

밤마다 같은 꿈을 꿨다. 새처럼 하늘을 날며 내가 살던 동네 곳곳을 내려다보는 꿈이었다. 어린 마음에 그 능력 하나면 세상 전부를 다 가진 기분이었다. 잠에서 깨면 눈을 감고 그대로 누운 채 꿈의 잔상을 떠올리며 행복에 젖어들었다.

꿈을 직접 느끼고 싶었다. 미국으로 떠났다. 1년 동안 비행학교에서 공부하고 훈련하면서 미국과 한국의 사업용 조종사 면허를 취득했다. 내게 남은 건 단순한 손바닥만 한 자격증이 아니다. 길을 걷다가도 눈 감고 뺨을 스치는 바람을 느끼다 보면 그때 그곳으로 돌아가 비행하는 나를 만난다.